순창(Sunchang)

2017. 8. 11. 00:17뽕달홍보관/Life in Sunchang

순창

- Sunchang -


순창에 돌아와 버렸다. 돌아왔다가 아닌 돌아와 버렸다라고 하는건 뭔가 빈정이 상해서 일까? 괜히 돌아와 버렸다 라고 말하고 싶다. 5월 30일에 용달차에 짐을 싣고 서울에서 순창으로 내려와 바로 원룸으로 이사하고 순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나 먼길을 돌아 다시 순창이다. 여행이 아닌 삶으로서 내가 돌고 돌아 온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순창에서 19년!

- 대학과 군생활을 부산에서 7년,

- 필리핀 어학연수 1년,

- 호주 워킹 1년,

- 중국 어학연수 거의 10개월,

- 그리고 대전에서 직장생활 5년,

- 떠돌이 몇달,

- 베트남 달랏에서 6개월,

- 서울에서 일년반,

- 그리고 다시 돌아온 순창에서 이제 두달 반!

이런 과정중에 또 이사는 얼마나 했을 것이며, 이사비에 교통비에, 이사하여 장만한 살림살이들, 이사가며 버린 것들 까지 하면 X-Uri 표현으로 집한채는 장만 했겠다.

 

삶의 사이클이 그러하다면 그냥 받아들이기론 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게 니 팔자려니 해라고 말하지만, 재밋어 보인다고 하지만, 니가 재밋어서 그러는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 스스로는 정말로 정말로 드럽게 귀찮은 일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짐을 싸는게 힘들어지고 그 짐을 들게 계단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던 날들이, 이제는 생각만 해도 후달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순창을 벗어난 이후에 순창은 그저 가끔 들리는 나의 고향이었다.

 

눈이 하얗게 쌓인 새벽에 순고 기숙사를 탈출해 터미널 사거리에 나가서 아무에게도 밟히지 않은 눈에 내 첫발자국을 남기던 순창,

무심히 하늘을 보다 달리고 싶어서 읍내 끝에서 끝까지 달리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순창,

해마다 5월이면 천을 따라 피는 벚꽃을 보며 걷고 사진찍고 삼겹살을 꿔먹던 순창,

양념치킨이 맛있었던 성안복실 칸막이 테이블에 안에서 가방에 몰래 싸온 소주를 친구 생파때 나눠 먹던 순창

장날이면 붐비던 터미널,

유난히 다방이 많아 오봉이라고 부르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은 나가는 티켓 언니들,

한여름이면 강천산 계곡 용소에서 다이빙하고 놀던 시절들...

 

순창은 나의 추억일 뿐이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방학이면 집에 들러 엄마가 해준 따신 밥을 먹던 그런 아련한 공간...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지만, 이제 당분간 순창은 다시 나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나의 빚을 정리하고, 다음 꿈을 위해 기다리며 준비하는 그런 공간이다.

 

다시 돌아온 순창은 해가 떨어지고 물든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밤에는 한적하고 사람이 없어 밤마실 다니기에 좋고, 원룸은 왜 이렇게나 많고, 터무니 없이 월세는 비싼건이 알수 없는 곳이다. 인접한 담양에 비해 알려진 거라곤 고추장이랑 그나마 강천산 뿐인, 그것 외엔 딱히 뭐가 없어 보이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이 좁은 곳에서도 맛있는 콩국수집이랑, 통닭 집이랑, 블로그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카페랑, 롯데리아랑, 순창사람들은  잘 모르는 여행자들을 위한 금산여관이랑, 방랑 싸롱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며 사랑도 불륜도, 자리 하나 차지하기 위한 다툼도 일어나는 곳이다.  

 

왜 진작 순창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 순창에 돌아와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는 돌아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올 이유나 명분을...

 

어쨋든 그럴만한 이유가 생겼기에 다시 돌아오게 된것이다.

온종일 일을 하다 잠들어서 그런건지,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쉬이 잠들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직은 여름이라 뜨겁지만 이제 곧 깨끗하고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문 밖을 나가면 들리면 시끄러운 차의 소음들이 없음에 감사한다.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가시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습관적으로 금산에 오르고 강천산 계곡을 따라 걸을 생각이다. 벌써부터 할배 같지만, 그럴 내가 기다려진다.

 

어쨋든 나는 다시 순창에 돌아와 버렸다.